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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전)WBA밴텀급 세계챔피언 ‘홍수환 장로,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특집 인물탐방] 하나님을 만난 ‘홍수환 장로,

최성룡 기자 | 기사입력 2017/03/02 [08:30]

하나님을 만난 (전)WBA밴텀급 세계챔피언 ‘홍수환 장로,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특집 인물탐방] 하나님을 만난 ‘홍수환 장로,

최성룡 기자 | 입력 : 2017/03/02 [08:30]

 

 

▲     ©편집국


[시사코리아뉴스]최성룡기자 =
대한민국 최고의 명강사 ‘홍수환 전)WBA밴텀급 세계챔피언 현)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내 인생에도 한방은 있다"혹독한 누명 속에서도 진실은 반드시 승리 한다,라며 필자에게 말문을 연다.

 

어려서부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품에 행동이 민첩하고 재기가 뛰어나며 운동을 좋아하여 건강한 체력과 함께 스포츠맨십이 뛰어나 평생을 “대한민국 권투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스포츠계 산 증인이다.

 

▲     © 편집국

 

건강한 체력에 활달한 기상은 물론 정의감이 뛰어나고 황상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도우며 즐겁게 사는 생활로 스스로 보람과 긍지를 찾는 진실된 생활을 찾아 의지를 펼쳐가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이며 “이 시대의 영원한 복서”다.

 

그는 또 ‘항상 말보다 행동을 중요하게 실천하며 신의를 소중하게 여긴다’하는 일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다함으로서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 하나님을 만난 사람 홍수환 장로.....     ©편집국

고향 인천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인천체육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스포츠에 있어서 자립하고 스포츠에 대해 자립하는’ 교육을 받았고 이를 통해 스포츠의 생활화에 필요한 저력과 학문 그리고 내공을 쌓았다,

 

그는 1969년도 프로권투에 입문했다.1972년 밴텀급 동양챔피언에 올랐다.1974년 비행기를6차레나 갈아타며 무려30시간에 걸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 아놀드 테일러 꺽고 WBA밴텀급 세계챔피언타이틀을 획득했다,

▲     © 편집국


 이때 홍수환은 유명한 신화를 남겼다.시합이 끝난 후 어머니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엄마나 챔피언 먹었어"그래 대한 국민 만세다,라는 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후 한 체급을 샹향조정하여 1979년 지옥에 서온 악마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카라스키아를 물리치고 WBA주니어 패더급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서 국내복싱 사상 최고로두 체급 석권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     © 편집국

 

당시 그 드라마틱한 경기는 그날을 TBC(동양방송)을 통해 무려 27번이나 재방송이 되는 국내 스포츠중계 초유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날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4번이나 다운을 당하면서도 한국인의 강한의지를 불태워 마침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투혼을 발휘한 데 대해 전 세계의 복싱 펜들을 경악했으며 그때부터 오뚜기라는 별명이 지금도 따라다니고 있다.

 

▲     © 편집국

 

1980년 은퇴하기 까지 50전 41승14KO 4무 5패의 전적을 남겼다.또 많은 후배들을 지도를 한 그는 전 세계챔피언 김철호와 장정구의 트레이너를 맡았고 1982년부터 10년간 미국에서 생활했다.1992년 한국권투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공군사관학교 복싱교관을지내기도 했다,최근 권투해설위원,국내 유수 기업체 강의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BOXERCIZE회장 그리고 현재 "한국권투위원회"회장직을 두루 맡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고 있다,

 

‘권투인 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슬픈 사건’이 있었다.나를 비롯한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들이 서울 순천향대학병원에 모여 경기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최요삼(34.숭민체육관)의 쾌유와 한국권투위원회(KBC)임원진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권투인으로서 가장 가슴 아파야 했다.

 

▲     © 편집국

 

'홍수환 챔프는 또 한 번의 루머에 휩싸이고 만다,'은퇴한 복서가 링을 떠나서 특별히 할 일도 없었을 것이었고, 돈 (2억) 받아다 주면 50%를 떼어주겠다는 제의를 마다했을 홍수환이 아니다' 란 검사의 치졸한 편견,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 역시 '홍수환 급'의 지명도 있는 사람 하나를 잡아넣는 다면 난 특진이라는 사악한 직업의식, 그리고 천박한 추측 기사에 일가견이 있는 기자의 삼류 직업의식, 이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모여서, 아무 죄가 없던 사람을 '폭력 해결사'로 몰고 갔을 때 대처할 방법을 몰라 가장 힘들었다.

 

당시 99년 2월 10일자 모 일간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이 기사가 올라간다. 전 챔프 홍 수환씨 '해결사 노릇'하다 영장 이 사건으로 인해 홍수환은 많은 걸 잃게 된다. 92년 미국 생활 청산 후 KBS 명 해설자로 등장해서 많은 복싱 팬들의 가려운 곳을 제 대로 긁어주던 '차세대 해설가' 자리도, IMF 시절 100여개의 기업체 신입/영업 사원 교육 특강의 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치던 '신바람 강사'자리도 타격을 입었다.

 

▲     © 편집국

 

이뿐 아니다.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의 자존심, 명예, 그리고 그를 아끼던 팬들의 기대마저도 사건의 현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홍수환은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게 되고 얼마 있자, 항소심에서 '무혐의'가 아닌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비로소 억울함과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홍수환의 '바닥'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링 위에서 보여준 '4전5기 정신'은 실제 그 가 인생에서 극복해 나가는 역경의 나날들에 비하면'장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이때 들면서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권의 책을 발간하게 된다,

 

챔프 홍수환‘은 산송장처럼 안일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기에 반드시 자신은 ’인생의 챔피온‘이 될 거다. 내 인생에도 한방과 회심의 카운터펀치가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책. 그 한방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라는 책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4전 5기 오뚝이 인생 경영.' 많은 이들의 가슴에 큰 감동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를 불러 일으켜준 한국의 록키 홍수환 선수..그의 권투인생과 인생철학을 아주 명쾌하게 풀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삶과 인생 역전 드라마를 고소란히 축소시킨 도전과 성공, 실패.그리고 좌절과 극복하는 이야기들은 그 두려움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고 읽는 이로 하여금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 책은 매 순간 순간 경기에 앞선 그의 다짐과 경기 후의 그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자아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순간의 감동을 보다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그의 멋진 표현력에 독자들은 감동을 자아낸다, '

 

그는 또 비극이 어찌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는가.운명의 여신이 어찌 나에게만 싸늘한 냉소를 보내는 것이겠는가,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은 이 세상에 많고도 많다. 삶이 만든 허망,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불운에 빠져 죄도 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도 자신을 이겨낸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희망의 메세지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을 만난 홍수환 장로 요즘은 간증집회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80년대 중반 가수로 큰 인기를 얻었던 동생 홍수철(예빛교회 목사)또한 가수를 떠나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생의 작사 작곡한 찬양 곡을 자주 부른다,

 

지난 74년 파나마의 카라스키야를 3회 KO 시킨 것은 “악마와 천사의 싸움이었다” 며 이름대로 카라스키야를 KO로 보낸 그는 넒을 홍, 빼어날 수 빛날 환, 이름대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또 그 당시 '나는 몰라요'를 히트시킨 70년대 성인가요계 최고의 인기가수 옥희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4전5기의 신화를 남긴 세계챔피언에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돌아와 전도자가 되어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는 '홍수환 장로' 우리는 그냥 허무하게 살다가 갈수 없고"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다 가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힘줘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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