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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노트'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가수 유미리가 외사랑 인기독차지!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 기사입력 2014/08/25 [15:39]

'젊음의 노트'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가수 유미리가 외사랑 인기독차지!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 입력 : 2014/08/25 [15:39]

 
▲     ©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시사코리아뉴스]최원태기자 = 한때 '젊음의 노트'로 온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가수 유미리가  1986년 제7회 '강변 가요제'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20대 꽃다운 소녀는 세월이흘러 대형가수 로서 대중들에게 속에 파고들어 인기를 왕성하게 누리고있다.1986년 제7회 MBC강변가요제 대상 젊음의 노트.그후 국민속에 대중가수로서 발도둠 하게된다.
 
유미리는 1986년 제7회 MBC강변가요제 대상 <젊음의 노트>1987년 1집 <가슴에 기대어 한번 더>1987년 2집 <첫인상> <오직 당신만>1989년 3집 <그대 어서와요>1990년 4집 <청춘교실> <사랑은 추억으로 나를 찾아와>1992년 5집 <지금쯤> <내 슬픈 사랑>2007년 싱글 <넌 내꺼/ 콕 찍어>2009년 싱글 <지못미/ 잡아줘>2011년 싱글 <사랑의 소주잔>수록 곡 등으로 인기를 누리고 정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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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미리 는  2012년 <외사랑>지금은 ‘외사랑’ 자신의 앨범으로 신재동작사 신재동 작곡가의 곡이다.작곡가 겸 KBS 전국노래자랑 악단 장인 신재동씨가 직접 만든곡이다.
 
그대 오신다면은 내게 오신다면은 꿈을 꾸듯 춤추면 그대 맞아줄래요 그대 오신다면은 내게 오신다면은 바람처럼 살며시 살며시 다가 갈래요 나를 찾아 오는 그 길에 꽃잎 뿌려요 나를 찾아 오는 당신께 모두 줄래요 예예예예 오세요 꿈길속으로 조용 조용 조용히 아무도 몰래 처음 본 사랑 나만의 사랑 아무도 몰랐던 사랑♡그녀는 언론 매체 통해 또 크고 작은 각종행사 등을 누비고 왕성한 할동을 하면서 인기를 독차지 하고있다.우리는 외롭기에 자꾸 목소리가 높아지고 혼자 고립되지 않으려는 몸부림그래서 사람을 그리워 한다.
 
작곡가 신재동은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으로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은 그가 후배양성에 힘을 다해 곡을 실어준 현재 ‘가수 현철.남진.이용.최석준.문희옥.박주용.신정화.희승연.이정욱.남승희.한진.’를 포함하여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수가  배출한 작곡가 이기도하다.
 
가수 유미리는 가수활동 긴세월 수상경력으로1985년 전미주 교포학생 가요제 1위1986년 MBC 10대 가수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 7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등 수상하여 국민 가수로 국민 가수유미리 는 분명하다.<젊음의 노트>는 대한민국 응원가로도 쓰이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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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대학가요의 열풍을 몰고온 대학가요의 양대산맥 MBC대학가요제와 MBC강변가요제는 순수한 아마추어 학생가수의 작품만을 출품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유미리가 강변가요제에서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수상한 이후, 유미리의 아마추어가수에 스타덤에 올랐던것이다.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수상한 이후, 유미리의 아마추어가수 자격논란이 이어졌다. 우선 대상곡 <젊음의 노트>는 <정 호>라는 무명의 작곡가가 작곡한것으로 가요제에 출품되었으나 나중에 기성 작곡가 <장욱조>의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현재 저작권협회의 자료에도 장욱조 작곡으로 확인됨) 또한, 유미리라는 가수도 순수 아마추어 학생가수라기보다는 작곡가 장욱조씨의 문하생으로 프로가수 훈련을 받던중 데뷔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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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단의 하나로 강변가요제 무대를 택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논란이 되었다. 프로가수로 훈련받은 증거로..강변가요제 무대에서의 프로가수 뺨치는 세련된 무대매너가 꼽혔다. 보통 방송에 출연한적 없는 일반학생 참가자의 경우 카메라 위치를 의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유미리는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가 어느 카메라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세련된 카메라 리액션을 취해 프로가수 의구심에 확신을 더했다.
 
정규 1집 <가슴에 기대어 한번 더> 2집 <첫인상>등으로 나름 활발한 활동을 했었고 1992년 5집까지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갔으나 더 이상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유미리는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활동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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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데뷔 2007년에 싱글 앨범 [New 미리]라는 곡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녀는 복기하면서 새 앨범 홍보를 위해 계약한 홍보사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햇다.첨예한 입장 대립으로 결국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힘던 길을걷기도 햇다.음악을 하려고 복귀한 것이 법적 투쟁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거든요. 가수가 악보가 아닌, 법률서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돼죠." 당시 유미리는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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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길 힘들어요.노력 없는 성공은 없는 것처럼 ‘가수 유미리’는 지금 펜들에게 외사랑 으로 다시 인기를 독 차지하고 수평선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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