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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 노인회장’의 드라마 같은 삶!

[기획탐방] 의령 용덕면 상연리 성수연 노인 회장의 숨은 향토사랑~

최성룡기자 | 기사입력 2013/08/29 [22:05]

‘성수연 노인회장’의 드라마 같은 삶!

[기획탐방] 의령 용덕면 상연리 성수연 노인 회장의 숨은 향토사랑~

최성룡기자 | 입력 : 2013/08/29 [22:05]
▲      ©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의령 용덕면 상연리 한적한 시골마을 노인회 성수연 회장(76) “자신의 삶은 인간극장 한편의 드라마”같은 삶 이 였다,고 밝힌다.

성 회장은 70평생을 살아온 다양한 경험과 폭 넓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지도적 위치에서 지역민들의 화합 단결의 중심체가 되고 노인회를 이끌어 노인들의 건강증진을 꾀하며 밝고 건강한 지역사회 건설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상연리 노인회 회장이다.


“인간은 얼마나 세상을 사는가”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고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국가와 사회 인류를 위해 얼마나 봉사하였는가.”가 중요하다.’성 회장‘은 현제 ’대한노인회 용덕면 상연리 회장‘ 의령군 국가무공수훈회‘유족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또 지난 1980년 보험회사에 입사하여 오늘까지 34년 ”보험설계사”로 장기근속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조물주의 섭리일진데 무가치한 삶은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된다” 그의 인생관이다.이름없는 들판의 풀도 다 그 요긴하게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는 길이 곧 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이웃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 곧 애국하는 길이라는 건강하고 건전한 사고를 생활관으로 하고 있는 그는 일찍이 경남 의령군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농업을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흙과 더불어 소박하게 생활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허욕이나 과욕 없이 순박하고 근면성실하게 생활하는 부모의 근면 정직한 생활관을 감화 받으며 자랐다.

▲      ©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활달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 그러나 강인한 진념과 치밀함이 내재되어 있는 철(鐵)의 여인”이다.

성 ’회장은 “의령군13개 읍.면에 유일한 용덕면 상연리 여성노인회장”을 맡아 노인들의 건강증진을 꾀하며 마을에서 신임을 얻고있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상연리로 시집을 와 농사일은 물론 남의 집 디딜방아 찢는 날 품일부터 보험설계사일 까지 닥치는 데로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지난날의 고생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던 그해에 초급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부모님을 도왔다.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열여덜(18세)살 어린 나이에 이웃의 중매로 지금은 작고한 전 사수(병역명문가 집안/화랑무공 훈장)남편과 결혼했다.결혼 당시 남편은 나보다 열 살이나 위였다. 전쟁 중에 부대에서 포상(공로)휴가 나왔을 때 중매장이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다.

결혼당시 대궐집과 논.밭이 많아 빈곤하게 살지는 않겠지 하고 결혼했다. 알고 보니 다 큰집 재산이였다.집이고 전.답.은 나를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큰집의 것을 남편집에서 경작을 하고 있던 것이였다.철저히 나를 속인것였지만 당시는 어쩔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드려야만 했다. 결혼한 이듬해 큰집재산을 돌려주고 하루아침에 오두막 단칸방으로 옮기면서 가슴속으로 울기도 많이 했다.고생또한 말이 아니였다.

“그때는 내 눈에 콩깍지가 씨였는가비여 노름쟁이.욕쟁이 술쟁이.인 남편이 그래도 좋았으니깐 결혼하여 자식들 낳고 반평생을 같이 살았제”3년만 있으면 결혼 60주년 기념잔치를 자식들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놈의 술 때문에 3년전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 가 버렸어“야속하구만 서방님이? 하면서도 국가 유공자인 남편의 전적비를 집 앞마당에 세워 아침 저녁으로 추모를 기리고 있다.

지금은 자식들 7남매 모두 출가하여 떠나버리고 남편마져 떠나버려 텅빈 집 홀로 남았지만 남은 밤나무밭 농사일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일 을 도 맡아 하며 유일한 낙을 삼고 있다. 칠순이 훌쩍 넘은 친구들은 경노당에서 10원짜리 고수돕을 치며 여가를 즐기고 있지만 성 회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나이를 잊은체 아직은 여가를 보낼 시간의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고추밭 농사와 밤나무 밭 일등 ‘성 회장’의 손이 안가는 곳이 없다. 이뿐 아니다.관변.단체 장으로 봉사활동하는 봉사인으로 33년 보험설계사등으로 분주란 나날을 보내지만 자신이 개척한 고객관리를 ‘꼼꼼이 기록하는 일기장‘ 컴프터를 다루는 솜씨는 젊은이 못지않다.고 지금도 자랑을 한다.

당시 우리 부락은 47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한글 아는 사람은 나를 빼고 드물었다. 군대 간 자녀들과 객지에 나간 자녀들의 편지를 써주는 일을 도 맡아했다.. 60년 초 여성 추진회 생기면서 처음으로 여성교육을 이수 받고 이때부터 팔을 걷어붙이며 “절미.저축운동”을 앞장서서 추진해 나갔다.

그녀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낙후된 농업과 빈곤한 농촌 경제를 타개하고 살기 좋은 농촌근대화를 이룩하고자 적극적인 자세로 일해왔다.그간 새마를 부녀회 연합회 장을 맡아 오면서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향토개발과 마을의 현안문제 해결과 융화협동에 전력하였으며 의령군 13개 읍면에 유일한 여성노인회장과 무공수훈회 유족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 선진화와 복지사회 조성에 힘쓰고 있다.

‘성 회장‘이 .대한민국 여성회 활동을 시작하며“내 고장과 마을은 내 손으로 가꾼다”는 투철한 애향 사상과 .주인의식으로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서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는 72년 새마을 부녀회장 을 맡아 농촌에 전기가 들어오고 마을길 넓히고 지붕개량등 풀베기대회 퇘비모우기등 마을의 발전을 앞당기는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      ©시사코리아뉴스/편집국


“지난 35년간 하루하루의 일과와 수입.지출을 꼼꼼하게 가계부에 기록하는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용덕초등학교.육성회,체육회 등 임원을 맡아 지역사회와 학교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교육의 발전을 위한 교육여건의 개선.불우학생의 장학사업등을 지원하였고 여성의 몸이지만 남자 부럽지 않는 남다른 봉사정신이 투철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성 회장은 용덕면 관내 정화위원 용덕면.새마을부녀회 연합회장.등을 맡아 노력한 공로에 힘입어 수많은 수상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그는 당시 주택개량 위생시설 개량,간이상수도 설치.마을안길.농로개설등 생활환경 개혁을 위시하여 퇘패풍속 철패.비생산적인 허례허식 추방과 저축 정신의 생활 화에 힘써 전개하여 근면 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구현하는데 지대한 업적을 쌓았다.

봉사직은 수입도 없고 많은 시간을 몸과 함께 투자해야 한다.이를 보다 못한 여성단체 군협의회 회장인 선배 언니가 봉사를 할려면 수입이 생겨야 더 큰 봉사도 할 수 있다며 보험회사에 추천을 하여 지난 1980년에 동해생명 보험사원으로 입사하여 동화생명.금호생명.KDB생명보험.까지 4번이나 회사 상호가 바뀌였지만 성수연 씨는 아직도 현직이다.10년 근 속상 15년 근 속상을 받으며 화려한 꽃다발과 동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서 봉사활동으로 맺은 인맥이 한목했다.

“지난 1980년도 보험회사 입사후 첫 달 월급봉투를 손에 받아 쥐고 가슴 떨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으로 만져보는 현금 오십사만(540.000)원이였다.그 해 논밭을 장만했다.그리고 다음해에는 밤나무 산도 사들였다.당시 밤나무 산에 수확한 밤을 지개를 지고 나르면서 그때척추에 무리가면서 이 때문에 척추수술 까지 받았다.

한때는 축산업을 기업으로 발전시켜 영세한 농업 소득원을 개선하고 축산업 진흥에 노력한다는 일념으로 자식들이 어릴 때부터 소(한우)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매년 송아지 한 마리씩 태어나면서 소득원이 되여 7남매 교육에 큰 도움이 되었다.얼마전 축산업은 자녀들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지난해 소를 처분 했다.

유독 남에게 도움 받기 보다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생활을 실천하는 자세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유가족.그리고 상이를 입은 국가유공자들의 자립자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보훈사업의 질적 향상에 가교역활의 공로로 지난해 “장한 아내 상”을 ‘창원보훈지청’으로부터 받았다.

“새마을 부녀회장”직을 처음 맡았던 시기에는 전통적인 농본 국가이면서도 당시에는 계속되는 흉작과 보릿고개.피폐한 농촌경제를 탈피하지 못했던 것은 농민들의 의식의 낙후성과 연구노력의 자세부족에 있음을 절감하며 정부의 새마을운동에 발맞추어 농민들의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일깨우고“하면 된다”는 신념과“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는데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공로 때문에 수 많은 상패와 상장들이 이를 말해준다.

“욕심은 곧 사망이다.무엇을 남겨 놓고 갈 것인가? 선(善)한 싸움을 싸우자”

세상의 부귀영화가 모두 헛된 것이요.세상의 모든 재물은 자신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쓰는 것이요.저 세상을 향할 때에는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부질없이 욕심을 부리고 추한 경쟁과 싸움을 계속하니 ‘이전투구’라 하였던가.?

성 회장은 농사일을 천직으로 삼고 부단한 노력으로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그 동안은 욕심과 경쟁 속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근래에 이르러서는 분수이외의 욕망을 버리고 봉사활동을 통하여 남을 돕는 생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생활.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로움을 추구하는 생활에 힘 을 모우고 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는데 아직은 일할 만한 나이다.라며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유행가 가사를 따라 부르는.‘성수연 회장’은 젊은이 못지않는 열정으로 마지막 ‘혼’(魂)을 불사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최성룡기자

정론직필의 자세로 임한다.
시사코리아뉴스 회장 최성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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